칼럼

‘뒷걸음질’ 대한민국 국가 청렴도

 서울올림픽 개최 전 해인 1987년에 취재차 남아시아의 한 국가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기자들이 해외에서 본사로 기사를 보낼 수 있는 수단이 전화나 팩스가 고작이었고 그마저도 제한된 전화 회선 때문에 취재기자들끼리 국제전화 쟁탈전까지 치러야 할 정도로 통신수단이 열악한 시절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전화 연결마저 순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슨 영문인지 나중 신청자가 먼저 전화를 거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점잖게 기다리다가는 날밤을 샐 지경이었다.


 거센 항의도 전화국 직원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분초를 다투며 기사를 보내야 할 입장이었던지라 분통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나라에서는 과외로 뭐라도 얹어줘야만 일이 해결되는 그런 시대였던 것 같다. 바로 ‘급행료’였다. 말 그대로 ‘급행료’를 주면 금방 일이 처리되고 그렇지 않을 경우 후순위로 계속 밀리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무질서의 극치였던 것 같다. 외국인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타국에서 보고 겪은 사소한 사례이지만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급행료’가 만사형통인 시절이 있었다. 나잇살 먹은 사람이면 ‘급행료’라는 말이 결코 낯설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급행료’라는 것이 사회 곳곳에서 만연했었다는 말이다. 특히 민원인에 비해 절대적 갑의 위치에 있는 공직사회에서 더 그랬다. ‘급행료’는 일을 빨리 처리해 달라는 뜻으로 담당자에게 비공식적으로 건네는 돈이다. 국록을 받는 공직자로서는 의당해야 할 일인데도 뒷돈인 ‘급행료’를 챙겨주지 않으면 이래저래 온갖 핑계로 민원인을 애 먹이던 시절 얘기다.  


 이런 ‘급행료’ 때문에 골병드는 것은 당연히 힘없는 일반 서민들이다. 재물에 눈이 멀어 저지른 권력 남용과 자신만 편하면 된다는 이기심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결과물이 곧 ‘급행료’이다. 그러면  지금의 우리 사회는 어떤가. ‘급행료’ 같은 편법이 사라지고 깨끗해 진 것일까. 다행히 편법의 단면인 ‘급행료’는 많이 사라진 것 같다. 공복(公僕)이라는 사명감을 가진 공직자들도 흔치않게 눈에 띈다. 그 만큼 공직사회가 과거보다 그 어느 때보다 깨끗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덩치가 공룡처럼 커진 ‘뇌물’이 아직도 우리 사회를 억누르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투명사회라는 말을 내뱉기가 민망할 정도다. 굵직굵직한 뇌물수수사건이 심심찮게 터져 나오는 것만 봐도 그렇다. 






 비정부단체인 국제투명성기구(TI)는 최근에 2016년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라는 것을 발표했다. 100점을 만점으로 해 국가별 점수를 매겨 부패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은 1년전보다 3점이나 하락한 53점의 낙제점을 받았다. 국가 순위에서도 176개 조사대상국 가운데 52위로 15계단이나 추락했다. 한국의 국가 청렴도가 오히려 뒷걸음질 한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가운데서는 29위로 거의 꼴찌 수준이다. 부패지수는 70점을 넘어야 사회가 전반적으로 투명한 상태로 평가받는데 한국의 청렴성 회복은 요원해 보인다.


 부패인식지수는 각국의 공무원이나 정치인이 얼마나 부패를 조장하는지에 대한 인식을 평가해 매년 발표하는 국가의 청렴도이다. 부패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독일 괴팅겐대의 요한 람스도르프 교수와 국제투명성기구가 공동 개발해 1995년부터 매년 발표하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과 아프리카개발은행, 국제경영개발원, 세계경영포럼 등 10개 기관이 전 세계의 사업가와 국가 분석 전문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13개 종류의 설문 조사를 근거로 산출한다. 한 나라의 부패정도를 객관적 시각으로 평가한 수치다.

 한국이 받은 50점대는 ‘절대 부패’ 단계를 겨우 벗어난 상태를 의미한다. 과거 후진국으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다. 후진국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인 부정부패를 한국은 여전히 껴안고 있는 셈이다. ‘비리 공화국’이라는 낙인이 찍힐까 걱정해야 할 판이다. 삼성이라는 세계 10대 기업을 갖고 있는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다. 이러고도 ‘세계 속 한국’을 외칠 수 있겠나 싶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 밝힌 전 세계 한류 팬은 6천만명으로 국내 인구보다 더 많다고 한다. 분명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편법과 부정부패가 아직도 만연하고 있는 한국 사회를 수많은 한류 팬들이 어떻게 볼지 심히 우려된다.





 국제투명성기구의 2016년 부패지수는 작년 9월 이전에 발생한 비리사건만 반영된 점을 감안하면 올해 한국의 부패지수는 또다시 뒷걸음질 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까지 몰고 온 ‘최순실 국정농단’이 불거지기 이전의 평가이기 때문이다. 작년만 해도 연이어 터져 나온 방산 비리와 해외자원 비리, 전 국민을 경악케 한 검사·판사 비리 등 부정부패가 수두룩했다. 그러나 올해는 이런 대형 비리마저 눌러 버릴만한 전대미문의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선진국을 향해야 할 추진 동력이 후진국 수준으로 역추진하는 한국의 청렴도다.


 국가 청렴도는 곧 국가 경쟁력이자 선진국의 순위다. 부패는 단순히 사회에 악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경제를 후퇴시키는 요인이다. 부패사회에서는 공정 경쟁을 확립할 수 없고 경제 성장에도 ‘발목’으로 작용한다. 일각에서는 부패인식지수가 10점 오르면 국내총생산(GDP)이 25% 상승한다는 주장도 있다. 부패는 결국 사회적 비용이 돼 그 만큼 국가 경쟁력을 갉아 먹는다. 이러니 국가청렴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잘 사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의 2016년 1인당 GDP는 2만7천700달러였다. 2006년에 2만달러에 진입했으니 11년째 선진국 범주에 속하는 3만달러에 도달하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지금 국가로 봐서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에 직면했다. 권력의 최 정점에서 주도된 각종 비리와 권력남용이 대외신인도마저 날개 없는 추락의 길로 몰고 있으니 말이다. 전 세계 언론이 관심을 갖고 연일 주요 기사로 다룰 정도이니 국가망신에다 국제무대에서의 공정한 경쟁에 치명상이 될 지경에  놓였다. 서민들은 먹고 살 걱정이 이만저만 아닌데 정치권은 권력 다툼만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이 세계 질서를 재편할 움직임을 보이는데다 우리의 이웃 최강국인 중국이 ‘사드 배치’를 트집 삼아 은연중 가하는 압박도 부담이다. 대내외 여건이 그야말로 온통 먹구름 뿐이다. 




 그러나 이런 국가적 위기가 오히려 국민적 단합과 국가개혁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발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늦은 감은 있지만 작년 9월에 시행에 들어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은 부패라는 사회의 독버섯을 뽑아낼 수 있는 희망이다. 앞당겨지는 대통령선거도 기회다. 비록 선심용 공약이긴 하나 대선후보들마다 독립적 반부패국가기관 설치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부패 기업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등을 천명하고 있는 만큼 무너진 국가의 부패방지시스템을 재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 다시는 권력의 부패가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갉아 먹도록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선진국 진입을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은 바로 부정부패 근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