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세월호 침몰 진상, 이번에는 밝혀지나



 전 국민에게 충격적인 안타까움과 슬픔을 안겨줬던 세월호가 침몰된 지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것도 차가운 바다 속에서 흐른 긴 세월이다. 결코 되새기고 싶지 않은 참사이지만 우리 모두가 세월호를 기억 속에서 지우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시신조차 확인하지 못한 실종자 9명 때문이다. 생사 확인이야 오랜 세월 탓에 새삼 거론할 문제는 아니지만 실종자의 유해를 거두지 못한 아픔 때문에 유가족은 물론 온 국민이 전남 진도군 앞바다인 맹골수도를 떠나지 못한 것이다. 44m 깊은 바다 물속에 가라앉아 있는 세월호 선체에 혹시 있을지 모르는 실종자 유해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다. 그래서 실종자 가족들은 팽목항에 아예 거처를 마련하고 생업까지 포기한 채 하염없는 기다림을 이어 온 것이다.


 이런 여망 때문일까. 세월호가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침몰한지 거의 3년 만이다. ‘2014년 4월16일’. 그날을 생각하면 다시는 보고 싶은 않은 선체이지만 그래도 반가운 것은 한 가닥 걸어볼 수 있는 희망 때문이다. 세월호 침몰의 진상이 이번에는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겠냐는 기대감인 것이다. 세월호 선체 인양에는 거의 3년이 걸렸다. 불가능한 일인 줄 알았는데 이제 와서 보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면 진작할 수 있는 인양인데 이토록 많은 시간이 흐른 이유는 뭘까. 모두들 정부의 의지 탓으로 돌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의도된 지연으로 의심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터져 나온 박근혜 정부에 대한 원망과 비난이 세월호 인양으로 되살아날 수 있어 미적미적 임기가 끝날 때까지 버텨볼 심산이 아니었냐는 것이다. 단정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있는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다만 이왕이면 좀 더 빨랐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일본에서 18년간이나 운항되다 퇴역한 중고 여객선인 세월호는 수학여행길에 오른 경기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 인솔자 1명, 일반탑승객 74명, 화물기사 33명, 승무원 29명 등 모두 476명을 태우고 제주도를 향하다 2014년 4월16일 오전 8시49분께 조류가 거센 전남 진도군 맹골수도에서 급변침하다 침몰했다. 사고이후 대응은 그야말로 우왕좌왕 엉망이었다. 배가 중심을 잃고 기울어져 표류하기 시작했는데도 선내에서는 ‘이동하지 말라’는 방송이 흘러나와 순진한 학생들은 선실에서 꼼짝 않고 공포에 떨며 죽음을 맞았다. 반면 이준석 선장 등 선원 15명은 이런 승객을 버리고 가장 먼저 탈출하는 몰상식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172명만 구조됐을 뿐 배가 침몰한 이후에는 단 1명도 구조하지 못하고 사망 295명, 실종 9명의 대참사를 빚었다. 이것이 위험을 상시 안고 있었던 낡은 배 세월호 참사의 개략적 전모다.


 세월호 참사는 희생자 유가족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고도 사고이지만 대형 여객선을 둘러싼 부실한 행정 관리감독과 정부의 사후 수습 태도 등으로 정부를 향한 국민적 공분이 하늘을 찔렀다. 사후 정부가 보인 허술하기 짝이 없고 주먹구구식 수습 태도 때문이다. 당시 세월호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슬픔과 분노 지수가 평균 83.8에 달한 것만 봐도 정부에 대한 원망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은 참사가 난지 한달이 지난 5월19일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하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만큼 진정성이 담기지 않았다는 이유다. 희생자의 명복을 빈다거나 진상규명에 대한 구체적 언급도 없었기 때문이다. 떠밀려 마지못해 내 놓은 담화라는 평가였다. 6.4지방선거가 코앞이어서 이런 의심을 사고도 남을 만 했다. 또한 국민과 공감하고자 하는 마음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박 대통령의 불통 태도는 ‘세월호 7시간 청와대 행적’의 족쇄가 돼 임기 내내 어두운 그림자로 따라다녔다.






 세월호의 침몰 원인과 관련해 여태 속 시원히 밝혀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검찰이 수사를 통해 밝혀 낸 것이 고작이다. 검찰의 발표 내용을 보면 세월호는 ‘관리 부실’ 덩어리였다. 2012년 일본에서 수입된 후 잇단 수리와 증축으로 총톤수를 늘려 배의 좌우 불균형이 생겼다. 또한 사고당일 최대 화물 적재량의 2배에 달하는 과적, 선체 복원에 필요한 평형수 등 감축의 사실이 드러났고 차량과 컨테이너를 부실하게 고박함으로써 복원성이 심각하게 악화된 것으로 추정했다. 게다가 협수로를 통과할 때 조타 의무가 있는 선장이 선실을 이탈하고 3등 항해사와 조타수가 과도하게 변침하는 등 선원들의 중대한 과실이 더해진 사실도 밝혀냈다. 1차적 책임이야 전적으로 선장 등 선원과 세월호 운항 선사인 청해진해운에 있다. 하지만 이런 편법과 부실투성이 여객선이 수백명의 승객을 싣고 버젓이 바다를 누비도록 방치한 정부의 책임도 클 수밖에 없다. 정부의 주요 책무중 하나가 국민의 생명보호 아닌가.


 검찰의 수사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침몰 원인과 관련해서는 온갖 추측과 검증되지 않은 주장만 난무했다. 암초충돌설, 구조결함 및 변경설, 항로 변경설, 내부 폭발설, 과적, 선체결함설 등이 끊임없이 나돌았다. 심지어는 미국핵잠수함과의 충돌설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이런 추측에는 무분별한 보도 경쟁에 앞장선 언론도 한몫 거든 것이 사실이다. 배가 깊은 바다 속에 가라앉아 있어 어떤 의혹도 밝혀낼 수 없는 상황을 틈탄 소문이다. 어찌됐던 침몰 직전 급변침을 하고 구조당국이 세월호 침몰 후 단 1명도 구조하지 못한 이유 등 진상규명은 반드시 밝혀야 할 숙제로 남겨져 있는 상태다. 다행이 세월호 선체가 각고의 노력 끝에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는 미수습자 유해 수습과 침몰 원인을 규명할 수 있는 기본적인 준비는 마친 셈이다.






 혹자는 이미 다 지난 일을 새삼 끄집어 내 본 들 무슨 소용이 있겠냐 강변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진실은 어떤 식으로든 밝혀져야 한다. 세월호 같은 참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한 출발이 진실 규명이다. 청산되지 못한 아픈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 되는 법이다. 세월호의 침몰 원인 규명은 되풀이 되는 역사의 사슬을 끊기 위한 첫 단추다. 검찰 수사 내용은 증언과 정황 등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세월호 선체 인양을 통해 검찰수사 내용의 사실 확인이 가능해졌다. 진실에 보다 접근할 수 있는 기회다. 그리고 사실 확인과 함께 책임 소재도 반드시 파악해야 한다. 특히 해운관련 관리 감독의 책임은 더욱 엄격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세월호의 아픔과 국민적 분노를 청산할 수 있는 길이다. 국민 세금으로 충당된 인양비용 900억원이 아깝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