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韓·美 간 ‘수상한’ 사드(THAAD) 합의



 그렇게 서두르더니 결국 일이 터졌다. 북핵 위협에 대비한다며 도입한 주한미군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두고 하는 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월28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10억달러에 이르는 사드 배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말을 느닷없이 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루 뒤 워싱턴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도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틀 새 두 번이나 똑같은 말을 한 것을 보면 결코 헛말은 아닌 것 같다. 일종의 ‘사드 청구서’다, 그것도 1조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우리 모두는 사드와 관련해 한국은 부지만 제공하고 사드 배치와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은 전적으로 미국이 책임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양국간 합의사항이라고 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더니 그저 어안이 벙벙하다. 정부가 좀 서두른다 싶었지만 북한의 미사일 위협이 노골화되고 있고 ‘공짜(?)’라는 말에 그냥 모른 척 하자는 것이 국민들 대부분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난데없는 거액의 청구서가 날라든 것이다. 왠지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 정부와 미국 중 누굴 원망해야 할지도 판단 불능이다. 서두르다 일을 만든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사드 문제로 한·미 양국 간 진실 공방이 벌어지는 양상이다. 문제는 사실상 배치가 끝난 마당에 비용을 부담해야 할 주체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데 있다. 우리 정부의 실무 부처격인 국방부와 외교부는 물론 청와대까지 미국의 비용 부담이 양국 간 합의사항으로 불변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미국 측은 트럼프 대통령이 나서 한국의 비용부담을 요구하고 있고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재협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고 있다. 국가 간 합의를 두고 합의 당사자가 서로 딴소리다. 우리 정부의 주장을 전적으로 믿는다면 미국의 ‘억지’ 내지는 ‘사드 알박기’ 밖엔 달리 해석이 안된다.


 양국이 공교롭게도 대통령이 바뀌고 새 대통령을 뽑는 과정에서 사드 공방이 터져 나왔다. 이 문제의 책임 소재로만 따진다면 전적으로 이전 정부의 일이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은 오랫동안 유지돼 온 맹방이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견고한 동맹관계는 유지돼 왔다. 이번 사드 문제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합의가 있었다면 어떤 이유로도 이를 쉽게 깰 수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상식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개돼온 상황만 봐도 이번 사드 문제는 결코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는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대로 ‘미국 우선주의’ 측면에서 사드문제에 접근할 태세다. 필요에 따라 합의 정도는 무시하겠다는 자세다. 자서전 ‘거래의 기술’의 저자이자 기업경영을 오랫동안 해본 트럼프가 국가 간 외교문제에서도 상거래의 ‘흥정’ 기법을 들이 댈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런 트럼프의 생각은 한국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가 대선기간 내내 주장해 왔던 것처럼 다른 동맹국 모두에 해당하는 사항이다. 국가 간 문제도 기업 경영의 잣대로 풀어갈려는 생각이 많은 것 같다. 전통적 외교방식으로는 트럼프를 상대하기가 어렵게 생겼다.


 그러면 ‘사드 카드’를 꺼낸 미국의 의도는 무엇일까. 대부분 미국 국익이라는 대전제를 바탕으로 한 해석이 많다. 지금으로서는 올 연말 예상되는 한·미 간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트럼프는 ‘한국이 미국 때문에 안보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며 방위비 증액을 강력하게 요구해 온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사드 카드’는 방위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의 일환일 가능성이 점쳐진다. 사드 청구서는 방위비 협상 아젠다에 두리 뭉실 집어넣어 실익을 챙기려는 일종의 뜸 들이기용으로 생각된다. 또한 자국의 방위산업을 위해 한국이 더 많은 미국 무기를 수입하도록 압박을 가하는데도 쓸모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 입장에서는 트럼프의 한국 방위관련 생각을 적극 해명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과 관련한 방위비 가운데 올해만 절반에 가까운 9천500억원을 부담하는데 ‘무임승차’ 운운은 어폐가 있다. 미국산 무기 수입 만해도 지난 10년간 36조원에 달하는 등 미국무기의 최대 수입국이 바로 한국 아닌가. 이런 잘못된 생각을 바꾸도록 하는 것이 외교 역량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면 자주 국방에 대한 아쉬움만이 더욱 커진다.






 어찌됐던 한국과 미국의 사드 협상은 이래저래 수상한 구석이 많다. 특히 우리 정부의 저자세적 태도는 보통 문제가 아니다. 주한미군이 사드를 왜 들여왔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위해 사정 사정해서 사드를 도입한 것처럼 말을 했다. 전문가들은 사드의 요격 사정거리를 생각하면 정부의 주장이 맞지않다고 말한다. 주한미군시설의 방어용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중국의 사드 압박이 거세지고 있는데도 정부가 ‘대선 전 사드 배치’를 전광석화처럼 밀어붙인 것도 이해할 수 없다. 무슨 숨은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는 이유다.


 당초 사드 배치 시기는 올해 하반기로 잡혀 있었다.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은 작년 11월 “향후 8~10개월 안에 사드 포대가 전개될 것”이라고 밝혀 빠르면 올해 7월에 배치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작년 12월9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정부는 바빠지기 시작했다. 곧바로 청와대가 사드배치를 비밀사업으로 분류하고 주한미군에 부지공여가 이뤄지기 전에 환경영향평가 업체를 선정했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대통령 부재 상태에도 미국을 방문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를 만나는 등 부산을 떨었다. 여기서 사드의 조기 배치를 위해 ‘사드 비용 재협상’등 모종의 거래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다. 이후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결정을 나흘 앞둔 올해 3월6일 사드 발사대 2기의 한국 전격 반입, 3월15일 김 실장의 워싱턴 재차 방문, 4월26일 사드 레이더 및 발사대 성주골프장 전격 반입 등 숨 가쁜 작전(?)이 전개됐다. ‘대선 전 배치’를 위해 우리 정부가 얼마나 서둘렀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니 미국의 ‘사드 청구서’ 폭탄에도 항의 등 크게 반발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미국이 재협상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는데 우리는 절대 그럴 리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다. 매우 궁색하다.


 우리도 곧 새 정부가 들어선다. 새 정부가 ‘사드 청구서 폭탄’을 어떻게든 처리해야 할 상황이다. 그렇지만 지나간 잘못은 덮어주고 용서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되짚어보고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알아야 미래를 위해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있다. 그래서 대통령 자리가 비어 있는 상태에서 국가적 중대 사안을 서둘러 처리한 이유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책임소재에 따라 책임자 처벌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제대로 된 대미 협상라인을 구축해 국익 차원에서 적극 대응하는 것도 서두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