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관습(慣習)은 어떤 사회에서 오랫동안 지켜져 내려와 그 사회 구성원들이 널리 인정하는 질서나 풍습을 말한다. 대체로 풍습과 같이 좋은 의미에서 관습이 쓰인다. 또한 나쁜 관행도 관습의 범주에 넣기는 하지만 양습(良習)처럼 묵인이 되기보다는 질타와 비판의 대상이 되면서 반드시 고쳐야할 폐습으로 여겨지게 된다. 하지만 어떤 악습은 여러 가지 이유로 좀처럼 고쳐지지 않은 채 사회의 고질병으로 자리 잡은 뒤 지속적인 반복현상으로 사회 구성원들조차 감각이 무뎌져 마치 어쩔 수 없는 사회 관습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쌓여온 이런 폐단을 적폐(積弊)라고 한다. 폐단이 관습화 되는 과정을 거치면 적폐가 된다. 나쁜 습관은 일개인도 부단한 노력 등을 통해 고치는 과정을 거치는데 사회 속에 뿌리 내린 폐단이 유독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릇된 사안을 그릇된 것으로 여기지 못하는 인식의 왜곡에다 특정 폐단과 얽혀 있는 이해관계 집단의 집요한 은폐 등으로 폐단의 누적화가 이뤄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선진국보다는 사회가 이런 악습을 배척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후진국에서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특히 정치권과 같은 권력집단 속에서 성행하는 습성이 있다 하겠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대한민국이 온통 ‘적폐 타령’으로 시끄럽다. 동·하계 올림픽과 월드컵 축구까지 개최하고 한류 열풍까지 불면서 전 세계 젊은이들이 닮고 싶어 하는 한국인데 근래에 와서 마치 적폐의 온상처럼 여겨질까 걱정해야 할 정도로 적폐가 최고 관심의 화두가 됐다. 적폐는 기득권의 달콤함에 빠져 있는 정치권이나 권력층이 앓고 있는 전형적인 후진국 병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한민국 사회 속에서 요지부동의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정치권 등 권력층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관습과 폐해를 적폐로 꼽고 청산을 핵심공약으로 내세웠을 정도다.


 공평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이런 적폐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청산 대상으로 삼아야 할 정도로 만연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경제 대국이면서도 사회적으로는 편법과 반칙이 난무하고 힘의 논리를 앞세운 갑을 관계가 오랫동안 묵인 되고 있는 곳이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이런 폐단은 누군가가 걷어내지 않으면 고착화의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다. 그래서 9년간의 보수 정권에 이어 등장한 진보이념의 문재인 정부가 출범초기부터 ‘적폐청산’의 기치를 내건 것이다. 진보 정권이 벌이는 ‘적폐 대청소’ 작업인 셈이다. 어차피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면 제대로 끼운 단추다. 국민의 65%가 문재인 정권의 적폐청산을 지지하는 것만 봐도 일단은 국민적 호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보수 야당은 생각이 완전히 다르다. 졸지에 집권 여당에서 야당으로 옷을 갈아입은 보수 세력들이 적폐청산을  ‘정치보복’ 수단이라며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자신들이 타깃인데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다. 1980년대 신군부세력이 추진한 ‘사회정화운동’을 떠올려 반발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시작은 사회부조리 척결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신군부의 정권창출을 정당화 하고 언론인 등 여론주도층을 길들이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사회정화운동이었으니 솥뚜껑보고 놀라는 모습이다. 어찌됐던 같은 사안을 두고 이처럼 양 세력의 말이 딴 판일 수 있나 싶다. 역대 정권 때마다 되풀이 돼 온 장면이니 새로울 것은 없지만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그저 짜증만 날 뿐이다.






 양 진영의 충돌은 국정감사장에서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민생 현안은 뒷전인 채 모든 논리를 ‘적폐청산’과 ‘정치보복’의 울타리에 가둬 놓고 각자의 색깔을 입히는 데에만 열중이다. 그들에게 여전히 국민은 아예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정치에 대한 국민적 불신만 키우고 있는 지조차 모른다. 이것이야말로 청산돼야 할 적폐이다. 사실 ‘적폐청산’은 우리 모든 국민의 바람이다. 깨끗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초석이기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가 생사를 건 진영 논리를 펴봐야 그들의 진정성을 믿고 응원할 국민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그저 그들만의 말장난으로 보일 뿐이다. 속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니 하는 말이다.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되짚어 보고 반성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잘못을 인지해야 바른 길이 보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일기를 쓰도록 권장하는 것도 같은 이치일 것이다. 하루를 되돌아보고 잘못한 일을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교육적 배려 아닌가. 하물며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있어서는 이런 과정이 더욱 중요시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관습적으로 반복되는 폐단을 청산하기 위한 문재인 정부의 조치는 명분과 진정성만 있다면 충분히 국민적 지지를 받고도 남을 만하다.


 문재인 정부가 꼽는 핵심적 적폐는 권력형 비리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몰고 온 촛불민심도 권력형 비리에 대한 저항이다. 민심과는 상관없이 여론을 조작 또는 왜곡시키면서 사리사욕을 채운 위정자들에 대한 국민적 심판 요구가 촛불이다. 현 정권도 이런 거부할 수 없는 민심을 충분히 알고 있다. 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70%에 육박하고 있는 것도 이런 믿음 때문일 것이다. 역대 정권과는 다르게 국민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 줄 것이라는 확신이 취임 6개월을 채 넘기진 않았지만 아직도 문 대통령에게 쏟아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과거 정권처럼 출범초기에 반짝이고 마는 일이 재현되질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담긴 믿음이다.






 호사다마(好事多魔)(?)일까.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사무직 당직자 일부와 비례대표 대기후보자들을 대상으로 공공기관이나 정부 산하기관에 갈 희망자를 암암리 조사한 사실이 드러나 정가가 발칵 뒤집혔다. 야당은 ‘낙하산 인사’를 위한 사전 준비 작업이라며 일제히 맹비난했다. 사실상 논공행상 차원의 ‘전리품 나누기’ 아니냐는 지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문재인 대통령이 강원랜드 채용비리와 관련해 엄벌지시를 내리자마자 바로 터져 나온 여당의 이해불가 처신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더군다나 민주당이 야당일 때만해도 공공기관의 ‘낙하산 인사’를 심하다 싶을 정도로 극렬하게 반대하고 비판했던 그들이 아닌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러니 ‘적폐청산’이 정치적 보복이 아닌지 의심받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순수성이 집권 여당에 의해 퇴색될 판이다. 이것이 맞는다면 또다시 공기업을 전리품으로 간주하고 나눠 먹으려는 시도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민주당은 당직자 등의 진로파악 차원서 이뤄진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누가 봐도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그냥 해프닝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 이유는 무엇일까. 또다시 ‘그 나물에 그 밥’의 정치밥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세간의 핫 이슈인 ‘적폐청산’과 ‘정치보복’은 누구의 말이 옳고 그른지를 떠나 정치판에서 언제든지 나올 수 있는 공방이다. 그렇지만 국민을 생각하지 않는 억지 논리는 허공의 메아리일 뿐이다. 문재인 정부와 집권 여당은 역대 정권처럼 집권초기 ‘반짝’ 혁신이 아닌 시작과 끝이 같은 ‘적폐청산’이면 큰 박수를 받을 것이다. 야당 또한 비판을 위한 비판만 일삼지 말고 적어도 1년 이상은 지켜본 뒤 정치보복인지 아닌지를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기다려주는 미덕을 한번 살려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