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구태(舊態) 여전한 국회…또 다른 적폐다



 국회가 또다시 민낯을 보였다. 20대 국회는 다를 줄 알았는데 어찌하면 이토록 온갖 국민적 비난을 받았던 과거 모습과 똑 같을까 싶다. ‘제 버릇 남 못 준다’더니 이 말이 딱 맞다. 입만 열면 외치던 국민은 국회의원 그들에게는 아예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유권자들의 표만을 쫓는 모습이 볼썽사나울 뿐이다.  우리 모두 큰 기대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4년마다 선량들을 뽑아 국회에 보낼 때는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져 보는 것은 이번만은 달라지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국회 또한 그저 ‘역시나’에 불과했다. 그러면 그렇지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2018년도 정부예산안을 심의한 국회가 이번에도 역시 크게 실망(?) 시키지 않았다. 그 나물에 그 밥일 텐데 기대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예상대로다. 힘 있는 여당은 뒷거래로 밀어 붙였고 힘이 없는 야당은 온갖 비난과 항의의 말로 뒷북을 치는 모양새가 또다시 재연된 것이다. 20대 국회 들어 처음 가진 정부예산안 심의·처리인 만큼 조금이라도 진지한 모습을 보였더라면 박수를 받았을 텐데 그것조차 하지 못하는 ‘무능’을 적나라하게 보였다. 이른 바 ‘쪽지예산’도 여전했고 이해관계에 따른 ‘짬짜미’도 사라지지 않았다. 정부야 국회가 처리해준 이런 예산으로 내년 살림을 살아야겠지만 ‘효율성 최대화’는 기대난망이 됐다.






 428조8천억 원 규모의 새해 예산은 법정시한을 나흘이나 넘기는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처리과정에서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배제되는 전례 없는 일도 벌어졌다. 정부와 여당의 독주를 견제해야 할 야당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 야당으로서의 대응 전략도 없었다. 뒷북소리만 요란하다. ‘위장 야당’인 국민의당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야합했다는 비난을 쏟아냈다. 남 탓하기에만 바쁘다. 향후 상임위 활동 보이콧을 선언하는 등 버스 지난 뒤 손만 흔들고 있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국민의당이 야당인 척하면서 뒷거래로 지역 예산을 챙기고 여당과 같은 편이 돼 예산안을 통과시켰다고 주장했다. 앞뒤 전후를 보면 홍 대표의 말이 틀리지 않다. 민주당도 국민의당의 협조가 없었으면 예산안을 통과시키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당이 최선을 다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야당으로서 반드시 막아내야 할 공무원 증원과 일자리 예산, 법인세 인상 등에서 아무런 역할도 못한 채 손 놓고 있었다. 특히 법인세법은 116명의 자당 의원으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바보짓’, ‘한국당 패싱’이라는 조롱을 받을 만하다.






 국민의당 또한 비난받아 마땅하다. 새 정치를 내세운 국민의당이 밀실에서 여당과 흥정을 벌인 것은 전형적인 구태(舊態)다. 평소 주장해온 제3당의 효율적인 견제 역할을 헌신짝처럼 내버린 행태다. 줄곧 반대 입장을 보였던 공무원 증원과 최저임금 보전용 세금 부문에서 여당 손을 들어줬다. 대신 1조원이 넘는 추가비용과 우회 노선으로 경제성 논란을 빚고 있는 호남 KTX 무안공항 경유 예산 반영과 선거구제 개편 약속을 반대급부(反對給付)로 받아 챙겼다. 누가 봐도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한 처신이다. 예산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기본 취지는 완전 뒷전이었다. 겉과 속이 다른 제3당의 본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쪽지예산’도 여전했다. 이번 국회만은 법정처리시한을 넘길 정도로 촉박한 일정 때문에 지역구 예산을 집어넣기 위해 벌이는 물밑 협상인 쪽지 예산이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분초를 쪼개 써야할 정도로 빡빡한 협상 일정 속에서도 우리의 자랑스러운 의원들은 그야말로 ‘끼워 넣기’를 성공적으로 해냈다. 주로 예산 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각 당 원내 지도부 의원들이 주인공들이다.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는 정부안에도 없는 지역구 예산을 반영시켰고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지역구인 광주지역 예산을 무려 1천억 원이나 증액시키는 개가를 올렸다. 각 당 원내대표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예산 결산특별위 의원들의 능력 발휘도 눈에 띈다. 예결위의 국민의당 간사인 황주홍 의원은 강진천 하천정비, 고흥 무인기 특화 지식산업센터 건립비용 등 15억원을 확보했다. 윤후덕 민주당 예결위 간사는 파주출판단지 세계문화클러스터 육성 예산 7억 원을 배정 받았다. 김도읍 한국당 예결위 간사 또한 부산·진해 경제자유구역 진입도로 예산 24억 원을 가져갔다. 아무리 지역구 의원이라고는 하나 해도 너무 했다는 생각이다. 지역에 큰 선심을 쓴 만큼 다른 예산에서 공백이 생기고 이로 인해 불이익을 받을 것이 뻔하니 하는 말이다.


 이런 쪽지 예산은 언론의 집중적 비판을 받지만 정작 해당 의원들은 오히려 이런 비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대다수 국민들의 비난을 받더라도 지역구 유권자들의 환심만 사면된다는 논리다. 그래서 국회 본회의 통과도 되기 전에 지역 예산 확보 홍보자료를 만들어 뿌렸다. 심지어 이용호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은  페이스북에 “기재부 담당 예산 국장이 힘들다고 해 예산 합의를 통째로 깨버리겠다고 압박했다”는 무용담까지 늘어놓았다. 국가 예산을 볼모 삼아 지역구 예산을 따냈다는 말이다. 쪽지 예산에 대한 언론의 비판이 자랑스런 훈장과 지역의 칭찬이 되고 쪽지 예산조차 챙기지 못한 의원들은 무능 소리를 들어야 하는 정서가 만연해 있는 한 편법 예산 심의는 사라지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정부가 고심 끝에 마련한 국가 예산을 누더기로 만들어 버리는 국회의원들의 이런 작태를 또 다른 적폐로 간주해야 한다. 당연히 청산돼야 할 대상인 만큼 부정청탁을 금지한 ‘김영란법’으로 다뤄야 할 사안이 아닌가 한다. 유권자와 이해관계가 있는 당사자의 민원 해결이니 청탁으로 봐야 마땅하다. 갖가지 혜택을 누리면서도 세비를 받아 오로지 또 다른 4년을 위해서만 뛰는 국회의원들이니 어떤 식이던 외부적인 압박 수단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에서 부려본 억지다.


 국회의 이번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3당 모두 싸잡아 비난받고 있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권 초기 내세웠던 협치 대신 뒷거래를 택했다. 양당체제의 폐해를 피력하며 3당 체제의 필요성을 국민들에게 호소한 국민의당은 당리당략만 쫓으면서 국가 예산을 정치적 흥정거리로 만들었다. 제1 야당인 한국당은 정치적 존재감은커녕 무기력함만 보여주고 말았다. 민주당과 국민의당도 승리의 축배를 들 수 있을 만큼 떳떳한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국회가 더 이상 국민의 걱정거리가 되지 안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